세계 물자 이동의 80%가 이뤄지는 항만 시설을 중국이 장악하면서 제조·물류 기지 일부를 중국 외 다른 국가로 옮기려는 서방의 목표가 시련을 맞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나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3일(현지시간) "중국의 항구 지배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려는 미국·유럽 기업의 목표를 약화하고 있다"면서 제조 기지 대안으로 여겨지는 인도와 동남아시아는 해운 허브로서 경쟁력이 아직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칠레 발파라이소 항구에서 한 남성이 중국 국적회사인 코스코해운(COSCO) 컨테이너선 근처를 걷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유엔(UN)에 따르면 전 세계 상품의 80% 이상이 선박으로 운송된다. 하지만 현재 인도·동남아 등에는 상품 운송에 필수인 항구가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특히 초대형 컨테이너선이 드나들 수 있는 항만 시설 대부분은 중국에 있다.
해양컨설팅 업체인 드루리 마리타임 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에는 1만4000TEU(1TEU는 20ft 컨테이너 1개)급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을 수용할 수 있는 항구가 76곳 있지만, 동남아 국가는 통틀어 31곳이다. 운송기술회사 포카이츠의 글렌 콥케 총지배인은 FT에 "다른 나라는 중국의 운송 능력에 필적할 수 없다"고 전했다.
그래픽=박경민 기자 minn@joongang.co.kr
중국의 압도적인 경쟁력은 공격적인 기간시설 투자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첸잔(前瞻)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2016~2021년 중국은 항구 인프라에 최소 400억 달러(약 52조원)를 투자했다. 지난해 중국 항구에서는 총 2억7500만TEU 분량의 컨테이너 처리가 가능했다. 이는 동남아 모든 국가가 매년 처리하는 양보다 80% 더 많은 것이라고 FT는 전했다.
독일 함부르크항을 출항하는 중국해운과 COSCO(중국해양해운)의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운행 빈도 면에서도 중국이 압도적이다. 중국에서 가장 큰 항구인 상하이(上海)항은 북미로 매주 51회 운항하고 있다. 이는 동남아 여타 항구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수치다. 북미와 연결된 동남아 대표 항구인 베트남 호찌민 항도 매주 19회 운항에 그친다.
독일 선사인 하파그 로이드의 디라즈 바티아 수석 관리 이사는 "고객들은 인도 항만에서 더 많은 물류를 들여오길 기대하지만, 인도는 항구 시설 투자 측면에서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그는 "변화가 빨리 이뤄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적어도 몇 년은 걸릴 것"이라 짚었다.
프랑스 해운기업 CMA-CGM 최고 경영자(CEO)인 로돌프 사데는 FT에 "인도·동남아가 대형 선박이 들어가는 항만 터미널을 만드는 데 5~10년은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저장성 저우산의 한 항구에서 중국 코스코해운(COSCO) 선박이 철광석을 하역한 후 부두에 정박하고 있는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중국은 자국 항만뿐 아니라 일대일로(一帶一路, 60여개 국가를 육·해상 인프라로 연결하는 계획) 정책을 통해 스리랑카, 파키스탄 등 다른 나라 항만에도 투자하면서 장악력을 높여왔다.
이밖에 '국가교통운수물류 공공정보 플랫폼(Logink)'이란 해운 정보 네트워크를 이용해 국제 물류 데이터를 수집·분석하고 있다는 점도 중국이 가진 해운 경쟁력의 단면이라고 FT는 덧붙였다.
카네기 국제평화재단의 중국 해양 전략전문가인 아이작 카돈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미국은 세계 해운업계에서 중국의 지배적인 역할을 고려할 때 신중하게 전투해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한편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다국적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줄일 계획을 갖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지난해 주중 유럽상공회의소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25%가 계획 중인 중국 투자를 다른 곳으로 이전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출처 - 더 중앙 / 서유진기자